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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성 있는 행복은 정신과 영혼의 수양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전신과 영혼을 수양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도덕적 목적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성경 속 행복
성경의 *심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른 행동을 하는 걸 의미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심하 안에서 살아가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분께서 우리의 삶에 제시해 놓으신 이상(ideal)을 열정적으로 좇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 뿐이다. 목적을 따라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성경적 맥락으로 보면 일종의 '우상'을 추구하는 것인데, 그 같은 삶의 태도는 우리에게 진실된 만족감을 가져다줄 수 없다.
*심하: 행복의 히브리어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아리스토텔레스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 속에 행복이 깃들 수 잇음을 간파했다. 좋은 삶을 살려면 먼저 '선(good)', 즉 좋음의 의미를 정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을 추구해야 한다. 무언가가 '선하려면(좋으려면)' 그것은 스스로의 존재 목적을 충족시켜야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좋은 시계는 시간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좋은 인간이란 무엇일까? 바로 올바른 이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잠깐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완전한 덕(virtue)을 따라 행동하며 외적 선(external goods)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사람을 그 누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상적인 존재로서 바람직한 가치를 따라 성실히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당신은 행복해질 것이다. 이성을 가꾸는 과정에서 우리는 도덕적 목적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성을 활용함으로써 우리는 고결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도덕적 목적을 좇는 삶은 우리의 영혼을 위대하게 만든다.
결론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도덕적 목적을 행복과 연관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 없이 행복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인 인간이 우주의 본직로부터 도덕적 목적을 발견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행복은 제약 속에서 누리는 것이다.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느냐보다 중요한 건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지 깨닫는 일"
한번은 유뷰브에서 기독교를 폄훼하는 영상을 봤다. 댓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
기독교는 말도 안되는 원죄론으로 사람들을 죄책감에 빠지게 하는 썩어빠진 종교다.
댓글에 동감하진 않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모태 신앙으로서 기독교의 기본 전제인 원죄론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본적이 없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나는 삶에서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부분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기독교에서는 정죄하지 않음. 그냥 나 혼자 이러고 있음)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죄책감을 느끼고 도덕적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야하지?
이에 대한 답은 궁극적인 행복, 지속성 있는 행복에 있었다. 이는 인간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집단무의식의 원형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인도의 왕자였던 붓다의 6년 고행은 무슨 의미이며, 성철 스님이 10년간 눕지 않음은 또 무슨 의미이며, 1400만 유대인들은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목숨 걸고 지키려 하는데는 무슨 의미가 있는것일까? 지속성 있는 행복은 정신과 영혼의 수양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인간은 단순히 집에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고 롤 티어가 올라간다고 궁극적인 행복을 느낄만큼 단순한 존제가 아니다. 행복은 제약 속에서 누리는 것이기에 행복이 될 수 있다.
동현아 힘내라. 다시 빡세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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